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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m 6:13 형이랑 말하기 싫어요. ]

석진이 제 핸드폰에 찍혀있는 문자메세지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일 있어요?"

친한 동생 남준의 물음에 석진이 턱을 괴고는 남준에게 물었다.

"남준아. 너 같으면 애인이랑 싸웠을 때 어떻게 풀거야?"

"저요? 저 같으면‪ 대화로 풀죠."

"걔가 거부하면?"

"거부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저는 대화로 푸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석진의 물음에 남준이 제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빨며 말했다.

"…대화가 싫으면 어쩔 수 없는건가…."

"…그거 형 얘기예요?"

눈치빠른 남준이 석진에게 묻자 석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형이?"

남준이 석진의 휴대폰을 고개로 가르키며 태형의 이름을 부르자, 석진이 짜증스럽게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안 받아."

"또 싸웠어요?"

"아니 걔는 무슨 남자애나 돼서 그렇게 잘 삐져? 내가 뭐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요."

"김태형이 하도 컴퓨터게임만 해대길래 눈 나빠져서 안경이라도 끼게 되면 안되니까 컴퓨터 잠금 걸어놨지."

"…화낼만 했네요."

"아니 도대체 왜? 나는 건강 생각해준건데?"

"일종의 취미생활인데 형이 그걸 컨트롤하는게 싫은거죠."

"애인인데도?"

"그럼 반대로 형이 맛있는 음식 먹고있는데 태형이가 형, 살찌니까 그만 먹어요. 이러고 뺏어가면 기분 좋아요?"

"좆같지."

"그거예요."

"그렇네."

남준의 말에 석진이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전화 안 받으면 집에라도 찾아가 보던가요."

"그래야겠네. 고맙다."

석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남준에게 말했다. 음료와 같이 나온 머핀 한 조각을 집어 일어나는 건 잊지 않고.





#.
띵동ㅡ

석진이 초인종을 누르며 태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받아…. 석진이 받지 않는 전화를 애타게 붙잡고 중얼거렸다. 사실 석진은 태형의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지만 예의상 한번 눌러 본 초인종은 예상대로 묵묵부답이었다.

추운 날씨에 입이라도 돌아갈까, 결국 석진은 문을 박차고 몸을 집 안으로 욱여넣었다. 찬 공기만 감도는 집 안에는 태형은 커녕 먼지 한 톨 없이 휑하디 휑할 뿐이었다.

"뭐야…김태형 어디갔어…."

생각 밖의 전개에 당황한 석진이 다시금 핸드폰을 집어들곤 태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을까 말까 고민했는지 신호음이 몇 번 이어지곤 태형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너 어디야."

"형이 알 거 없잖아요."

피식ㅡ

누가봐도 나 삐졌어요ㅡ 하는 태형의 말투에 귀여움을 느낀 석진이 작게 웃곤 태형에게 말했다.

"형은 너랑 잘 지내고 싶어서 그래. 어디야?"

다정스레 묻는 석진에 수화기 너머 태형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석진의 말에 대답했다.

"…피시방요."

"형이 금방 갈게."







#.
평소 태형이 자주가는 피시방으로 걸음을 옮긴 석진이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태형을 찾았다. 대충 쓱 훑었을 땐 보이지 않는 태형의 모습에 석진은 좀 더 안쪽으로 향했다.

세번째 라인쯤 갔을까, 낯익은 붉은 색의 머리가 눈에 띄였다. 찾았다. 석진이 붉은 머리칼의 주인을 향해 걸어갔다. 석진의 걸음이 멈춘 곳에는 열심히 고급시계를 플레이 중이신 태형의 뒷모습이 보였다.

게임에 너무 집중한 탓인지 석진이 온 지도 모른 채 헤드셋을 끼고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게임을 하는 태형에 석진이 조용히 태형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그제서야 뒤돌아보며 석진의 존재를 눈치 챈 태형이 헤드셋을 벗겨내며 석진에게 말했다.

"왔어요?"

언제 싸웠냐는 듯이 사근사근해진 태형의 말투에 석진이 물었다.

"게임 언제까지 할 거야?"

"왜요?"

태형이 되묻자 석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얘기 좀 하고 싶어서."

"나중에 하면 안돼요?"

태형이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석진은 그런 태형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좋은 마음으로 온 것과는 다르게 삐딱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왜? 게임이 더 급해서?"

석진의 날 선 말투에 태형이 다시 시선을 석진에게 돌렸다.

"아니…그게 아니라,"

"게임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

"와, 형…드라마 찍어요?"

석진의 말에 태형이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빨리 말해. 뭐가 더 중요하냐고."

"형 지금 여기 나랑 싸우려고 왔어요?"

제 물음에 대답은 피하고 오히려 되묻는 태형에 석진은 얼빠진 표정으로 태형을 노려보며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뭐?"

말문이 막힌 석진이 물었다.

"형 나랑 싸우려고 왔냐구요. 제가 게임하는게 그렇게 아니꼬워요?"

"왜 말을 그딴식으로 해?"

"그딴식이요? 형은 왜 말을 그딴식으로밖에 못하는데요?"

"뭐? 야. 미쳤냐?"

태형의 말에 욱한 석진이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왜요. 이젠 말로는 안되니까 폭력이라도 쓰시게요?"

지지않고 꼬박 말대답하는 태형의 태도에 석진이 남준의 말을 되새기며 화를 눌렀다.

"나는 너랑 대화로 풀고 싶어서 온거야. 내가 고칠테니까 뭘 잘못했는지 말해주면 안돼?"

석진이 최대한 다정한 말투로 말했음에도 이미 마음이 상할만큼 상한 태형에게는 석진의 다정함이 전달되지 않았다.

"말하면 뭐가 달라져요?"

"…뭐?"

"막말로 말하면 뭐가 달라지냐고요. 형 맨날 똑같은 태도잖아요."

"야 김태,"

"내가 99번 양보하고 형이 1번 양보, 아니다. 형은 양보한 적 한번도 없잖아요. 내가 부처지."

"김태형."

석진이 화를 눌러 담은 말투로 태형을 불렀지만 흥분한 태형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형은 단 한번이라도 남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내가 백날 다 받아주고 져 주니까 그게 이제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죠?"

"…."

"형은 진짜 이기적인 사람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밖에 모르잖아요."

"…."

그동안의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나오자, 태형 본인도 주체할 수 없이 자꾸만 말이 튀어나왔다.

"그냥 형 좆대로 할거면 하인을 구하지 왜 애인을 구해요? 왜, 하인은 너무 정이없어? 애인이란 명목으로 휘두르려고? 애초에 저도 그러려고 만나요?"

"…."

석진이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제 입에 태형도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가만히 태형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듣고있던 석진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천장에 달린 형광등에 반사되어 반짝 일렁였다.

"형은 입이 없어요?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미안해."

"…네?"

"…미안하다구."

석진의 울음을 꾹 참은 목소리가 떨렸다. 평소 제 성격대로 행동하고 사과 한번 하지 않던 석진이 울먹이며 사과하자, 태형은 그대로 뜨거웠던 머리가 차게 식는 느낌이었다.

"형 지금…저한테 사과하신 거에요?"

믿기지 않는 광경에 태형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다물고 태형이 되물었다.

"…."

살면서 남에게 사과 한번 한 적 없었던 석진으로선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엄청난 단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진의 입에서 '미안해.' 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건 그만큼 석진이 태형을 좋아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와, 형, 아니, 진짜,"

"…."

"…대박이다."

태형이 웃었다.

"…뭐."

"흐…아 진짜, 형…."

"…웃지마."

석진이 여전히 물기젖은 목소리로 태형에게 웃지말라며 핀잔을 주었지만 자꾸만 새어나오는 웃음에 태형의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위를 향했다.

"너무 좋아…."

"…."

"미안해가 원래 이렇게 달콤한 말이었나요."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아 지금은 형이 욕해도 좋아요."

"미쳤어 진짜, 사이코야?"

"아 몰라요, 몰라."

태형이 제 양쪽 귀에 손바닥을 가져다대곤 안들린다며 귀를 막았다.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석진이 살짝 미소짓고는 태형을 아프지않게 밀쳤다.

"…앞으로는 사과 자주 해줄게."

석진이 두 볼을 붉히며 말하자, 태형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본 적 없었던 행복한 웃음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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