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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총/- 뷔진

[뷔진] 신발끈

제약 2018. 1. 4. 17:25


*
너는 늘 같은 흰색 운동화만 고집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항상 같은 대답이었다.

'무슨 색을 갖다 붙이든 다 어울리잖아.'

하고.

언젠가 네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모두에게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목표를 가지게 된게 언제부터인지는 묻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미 그 꿈은 이룬게 아닐까. 너는 어딜가든 사랑받는 아이였으니까.


맨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나는 내 눈이 잘못된 줄 알았었다. 네 주위만 환하게 빛이 비췄었거든. 처음 네가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도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목소리가 너무나도 고와서 심장에 무리가 왔었기 때문에.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너는 그저 해맑게 웃을 뿐이었다.

"근데 있지, 태형아. 나는 그 중에서도 네가 제일 좋아."

어느 날 문득 네가 풀린 신발끈을 내게 내밀며 건넨 말이었다. 석진의 행동에 태형이 조용히 무릎을 굽히곤 그의 발을 제 허벅지 언저리에 올려놓았다.

"내가 말 안해도 너는 다 알아주잖아."

그런 태형을 바라보며 석진이 웃었다.

"늘 고마워하고 있는 거 알지?"

석진이 예쁘게 잘 묶인 신발끈을 한번 힐끗 보곤 태형에게 말했다.

태형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초롬하게 묻는 네 표정은 반칙이잖아. 아니라고 말할 수 조차 없었다. 그냥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
"너는 김태형이랑 무슨 사이야?"

어렴풋이 테이블 건너에서 내 얘기가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들어 그 곳을 바라보자 역시나 거기엔 네가 있었다.

"무슨 사이냐는게 무슨 소리야?"

네가 되묻는 모습도 어렴풋이 보였다. 질문의 주동자가 내가 아니었음에도 궁금한 마음에 가만히 앉아 너의 대답을 듣고만 있었다.

"왜. 둘이 맨날 같이 다니잖아. 밥도 같이 먹고 집도 같이 가고."

"꼭 무슨 사이여야만 같이 다닐 수 있는거야?"

쿵ㅡ 석진의 대답을 듣고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에 태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은 채로 그대로 식당을 나왔다. 복잡해진 머리를 붙들고 태형은 냅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형이 자리를 비운 식당에서 석진이 제 대답에 말을 덧붙였다.

"그럼 난 김태형 좋아하니까 짝사랑해서 같이 다니고 싶어하는 거라고 하면 이유가 돼?"

태형이 미처 듣지 못한 석진의 마지막 말이었다.





*
"김태형."

"왜."

"너 왜 요즘 나 피해?"

"내가 언제?"

석진의 물음에 태형이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쇠하는 태도에 석진이 더는 할 말이 없어졌는지 입술을 꾹 다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태형은 '할 말 없으면 나 간다.' 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 뒤로 계속 본인은 아니라지만 태형은 계속 석진을 피해다녔다. 그리고 석진 또한 그랬다. 더 이상 둘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는 없었다.



태형과 석진이 다시 만나게 된 건 어느 한 카페에서였다. 석진이 먼저 태형을 불렀고 태형 또한 흔쾌히 승낙했다.

"…."

"…."

"불렀으면 말을 해."

"김태형."

"뭐."

"나 남자친구 생겼어."

"…그게 뭐."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뭐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데?"

태형이 제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진짜 끝까지 이기적이다."

"뭐?"

"나는 네가 다 알아줄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야."

"됐어. 이제 연락하지 말자."

석진이 의자를 뒤로 드르륵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김석진."

"어, 지민아."

태형의 부름에도 무시하곤 전화받는 척 하며 카페를 나가는 석진의 뒷모습을 태형은 그저 바라보았다. 석진이 신고나온 검정색 정장구두와 함께.


석진은 운동화를 신지 않았다. 오직 갈색 코트에 검정색 구두만을 고집했다. 누가 뭐라하든 석진은 '난 운동화가 싫어.' 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어느 날 석진의 집 앞으로 택배가 왔다. 석진은 시킨 적 없는 택배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리송해할 뿐이었지만 택배에 적혀진 주소가 정확히 제 집 주소로 적혀있던 터라 일단은 택배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 참을 서성거리며 고민하던 석진이 결심한 듯 커터칼을 들고 택배 포장을 뜯었다. 흰 종이에 둘둘 쌓여있던 물건의 정체는 흰 색 운동화였다. 구석에 작게 접혀져 있는 쪽지와 함께 온 운동화에 석진은 어렴풋이 예감했다.

접혀진 쪽지를 펴, 안에 쓰여진 편지를 읽은 석진은 금새 눈물이 차오름을 느꼈다.

[ 너 운동화 좋아하잖아. 괜히 고집피우지 말고 이거 꼭 신고다녀. 그리고 너 나 없으면 신발끈 못매서 운동화 싫다고 한거지? 너는 나 아니면 안되겠다. 뭐해? 받았으면 빨리 나와. 데이트하자, 석진아. ]

마지막 말에 석진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는 창문을 열어재꼈다.

"김석진!"

석진을 부르는 소리에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태형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해해서 미안해. 박지민한테 다 들었어."

"뭘 들었는데."

석진이 물기 젖은 목소리로 묻자 태형이 여전히 웃으며 답했다.

"나도 너 좋아해."

"…."

"아니다, 나는 너 사랑해!"

"미친놈…."

석진이 웃는 걸 확인한 태형이 말했다.

"예쁘게 하고 나와, 자기야. 데이트 하자. 신발은 내가 선물한 걸로 신고 나와. 우리 커플 신발이야."

"나가면, 신발끈 평생 묶어줄거야?"

"신발끈만 묶어주게? 밧줄로 꽁꽁 묶어서 안 놔줄건데?"

태형의 말에 석진이 꺄르르 웃었다.

"얼른 나와ㅡ 기다리다 목 빠지겠다."

낑낑거리는 모습이 마냥 강아지 같아 웃음이 났다.

아 원래 김태형이 저렇게 귀여웠던가. 나가면 상이라도 줘야겠다. 기다려도 잘하고 웃음도 줄줄 알고 착하네.






석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기분좋게 새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여전히 신발끈은 묶지 않은 채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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