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아앙~! 엄마!” “왜 또 싸우고 그러니. 또 정국이 네가 형 괴롭혔어?” “진형은 울보야! 맨날 울기만 해! 꾸기는 아무것뚜 안 했단말이야!” 넓지만 지나다니는 차량 하나 없는 한적한 도로를 가로지르면 바로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길은 정국과 석진의 놀이터였다. 시골마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도시라고 하기에도 뭐 한 애매한 위치에 살고 있는 두 형제는 언제나 조용할 날이 없었다. 매번 싸우고 때리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몇 시간, 아니 몇 분만 지나면 언제 싸웠냐는 듯이 금세 서로를 보며 하하 호호 웃고 있는 둘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둘은 동네에서 유명인사로 통할 수밖에 없었다. 앞니 두 개 빠진 전정국과 매번 눈꼬리에 방울방울 눈물을 매달고 다니는 김석진. 둘은 이복형제였다. . . . ..
#. "싫어!" 정국이 별안간 생떼를 쓰며 고집을 피웠다. "정국아." "싫다구! 형아 그거 거짓말이잖아!" 있는 눈물, 없는 눈물 퐁퐁 흘려가며 울어대는 정국 탓에 석진이 난감한듯 머리를 긁적였다. "정국아. 진짜야. 정국이가 떡국 딱 열 개만 더 먹으면 형이 데리러 올게, 응?" 석진의 애원 아닌 애원에 정국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물었다. "…진짜루?" "진짜로." "거짓말 아니고?" "응. 거짓말 아냐." "형아 꾸기랑 약속한 거야. 잊어버리면 안돼." 정국이 내민 손가락을 석진이 제 새끼손가락으로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절대 안 잊고 있을게." "진형. 이제 가야 돼요." 태형이 석진의 이름을 부르며 재촉했다. 그에 석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정국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있..
* 댕 댕 댕 ㅡ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아ㅡ 늦으면 큰일이 나고 말거야. 정국이 헐레벌떡 바쁜 걸음으로 집을 향해 뛰었다. 아슬아슬하게 12시 4분이 되기 1분 전인, 3분에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전정국! 지금이 몇신데 이제 들어와?" "…죄송합니다." "정신머리가 있는거야, 없는거야? 내가 미리미리 다 끝내놓라고 했지? 됐고, 얼른 밀린 빨래나 하도록 해!" 정국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던 계모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대며 방을 나섰다. 조용히 빨래가 담긴 통을 어깨에 들춰 맨 정국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언제쯤 이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정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냐. 아버지께서는 새어머니와 언니들이랑 잘 지내라고 하셨..
데자뷰 : 최초의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 또 다른 말로는 무의식에 의한 행동이나 망각된 기억이 뇌에 저장되어 있다가 그것이 유사한 경험을 만났을 때, 되살아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라고도 한다. * 어디선가 봤더랜다. 복숭아를 닮은 분홍색 후드티에 끝을 야무지게 접어올린 스키니진. 그리고 귀여움을 한껏 더해주는 주황색 비니까지. 덧붙여 빨간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 마주보고 서있는 나와 너. 그 끝이 어디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우리는 어디에선가 아니, 정확히 이곳에서 만났었다. "정국아." "왜." "왜 그렇게 멍을 때려." "모르겠네." "무슨 일 있어?" "그냥…뭔갈 좀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야." "뭔데? 물건?"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