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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총/- 정진

[정진] 데자뷰

제약 2017. 12. 20. 23:06

​​


데자뷰 :​ 최초의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

​​​또 다른 말로는 무의식에 의한 행동이나 망각된 기억이 뇌에 저장되어 있다가 그것이 유사한 경험을 만났을 때, 되살아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라고도 한다.









*
어디선가 봤더랜다. 복숭아를 닮은 분홍색 후드티에 끝을 야무지게 접어올린 스키니진. 그리고 귀여움을 한껏 더해주는 주황색 비니까지.

덧붙여 빨간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 마주보고 서있는 나와 너. 그 끝이 어디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우리는 어디에선가 아니, 정확히 이곳에서 만났었다.








"정국아."

"왜."

"왜 그렇게 멍을 때려."

"모르겠네."

"무슨 일 있어?"

"그냥…뭔갈 좀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야."

"뭔데? 물건?"

"아니."

"그럼?"

카페에 마주앉은 친구의 물음에 정국이 답했다.

"소중한 사람."

"…소중한 사람?"

"응. 잊어서는 안 될 사람."




그날따라 평소엔 한적했던 도로가 꽉 막혔다. 집에가는 버스가 좀처럼 나아가질 못하자 정국은 답답함에 창문 밖만 바라보았다. 뻥 뚫린 시야에 조금은 여유로워진 마음에 기분좋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또 그 사람이었다. 오늘도 역시 분홍색 후드티에 스키니진을 입고 주황색 비니를 쓰고 있었다. 왜인지, 그 사람을 붙잡아 물어봐야 할 거 같았다. 나를 아냐고. 우리가 서로 알던 사이였냐고.

생각의 생각이 끝에 다다르자, 정국은 망설임 없이 버스 부저를 눌렀다. 행여나 놓칠까 눈으로는 쉴새없이 그를 쫓으며.

달려가고 싶었다. 달려가서 붙잡고 싶었다. 정국이 바뀌지 않는 신호에 초조함을 달래려 발을 동동 굴렸다. 야속한 신호등은 정국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바뀌지 않았다.

그 사이 주황색 비니를 쓴 그 남자가 큰 건물 옆 골목으로 모습을 감췄다. 정국이 끝까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신호가 바뀌자마자 냅다 골목을 향해 뛰었다.

꽤나 먼 거리에 거친 숨을 내쉬며 코너를 돈 정국의 시야에는 이미 주황색 비니는 커녕,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허탈한 기분에 정국이 참아왔던 숨을 깊게 내쉬었다. 만나고 싶었는데. 그 사람이 뭐라고. 정국은 자신이 왜이렇게 열심히 그를 쫓았는지, 애타게 그를 찾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오늘 시간 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물어왔다.

"왜?"

"오늘 소개팅 있는데 머릿수만 채워주면 안되냐?"

"싫어."

"아 진짜 제발 한번만. 내가 다음에 밥 사줄게, 응?"

"아…싫은데."

"이번만 부탁하자. 한번만 들어주라."

간절히 부탁하는 친구에 정국이 쩔쩔매다 결국엔 알겠다며 승낙했다.


"정국씨는 이런 자리 불편하신가 봐요?"

제 앞에 앉은 여자가 물어왔다.

이럴 줄 알고 오기 싫다고 한건데. 정국이 턱을 괴고 앞에 앉은 여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불편해 보여요? 전혀 아닌데. 섭섭하다."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정국에 앉아있던 소개팅녀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뭐예요. 정국씨는 센스도 있네."

티나게 호감을 표시해대는 탓에 속이 거북해진 정국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실례지만 화장실좀 다녀올게요."



*
"아…왜이러지."

울렁이는 기분 탓에 정국이 세면대를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원래도 이렇게 까지는 아니였는데 최근 들어 조금 심해진 거 같다.

차분하게 속을 다듬고 거울을 보며 머리와 얼굴을 정돈했다. 깔끔하게 옷도 한번 툭툭 털어주고는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제쪽으로 열어재꼈다.

"아."

제 품에 폭 안겨오는 남자에 정국이 당황해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

"…"

"…"

달달한 복숭아향. 그리고 그토록 애타게 찾아헤맸던 주황색 비니.

"주황색…"

정국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만 했던 말을 밖으로 내뱉었다.

"아…죄송합니ㄷ…정국이?"

정국의 품에서 고개를 든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확히 정국의 이름을 불렀다.

"어…저를 아세요…?"

모르는 사람에게서 제 이름이 나오자 여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정국이 남자에게 물었다.

정국의 말에 화들짝 놀란 그가 아ㅡ하는 짧은 탄성과 함께 입을 꾹 다물었다.

"저기요?"

"아…죄송합니다. 아는 동생이랑 너무 닮아서."

말을 끝마친 남자가 정국을 피하기라도 하듯, 황급히 자리를 나섰다.

"저기요! 잠시만요!"

남자를 따라 급하게 화장실에서 나왔지만 언제 같이 대화했냐는 듯, 남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
​'정국아 이거 봐. 하얀 눈이야.'

​'우리는 언제쯤 함께할 수 있을까?'

​'미안해. 미안해. 너를 사랑해서. 이런 나라서 미안해.'

벌떡ㅡ
정국이 침대에서 일어나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곰곰히 생각했다. 누군가 꿈에서 저를 애타게 불렀다. 얼굴엔 검정색 스프레이를 칠해놓은마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목소리만 선명하게 귀에 꽃힐 뿐이었다.

싱숭생숭한 꿈자리에 정국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검게 내려앉았다. 피곤함을 달래려 카페에서 평소 마시지도않는 아메리카노까지 사서 마셨건만, 효과라고는 전혀 없었다.

"하아…."

정국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옆에서 야ㅡ미안해. 어제 일 때문에 그래? 하며 물어오는 친구에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멍하니 창 밖만 바라봤다. 날이 우중충한게 오늘은 왠지 비가내릴 거 같았다.

"나 갈게."

"야 진짜 미안하니까?"

"됐고. 비나 맞지 마."

"뭐?"

"나간다."

정국이 옆에 놓였있던 제 가방을 들춰매며 카페를 나섰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정국이 의식의 흐름대로 고개를 돌렸다. 정국이 돌린 시선의 끝에는 역시나 또 그 사람이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 정국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번엔 도망가지 못하게. 조심스럽고 최대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정국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화들짝 놀란 그가 귀에 꽃혀있던 이어폰을 빼고 정국을 바라봤다.

"어…네?"

누가봐도 부자연스러운 반응에 정국이 작게 웃었다.

"저랑 얘기 좀 해요."




*
쪼록ㅡ쪼로록ㅡ

정국의 앞에 앉아 양손으로 컵을 들고 빨대로 핫초코를 야무지게 빨아먹는 남자에 정국이 끼고있던 팔장을 풀고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요. 우리 본 적 있죠."

"아니요…."

"진짜요?"

"네…."

"진짜로요? 한번도?"

"…네…아마도요…."

아마도는 또 뭐야. 정국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가 큰 눈동자를 도륵도륵 굴려대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정국이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네?"

"이름요."

"…진."

"네?"

"…김석진이요."

정국이 웃으며 말했다. 귀여운 이름이네요.

정국의 말에 석진의 큰 눈에선 또롱또롱 눈물방울이 쏟아져내렸다.

"어, 석진씨 왜 울어요…?"

"…죄송해요…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정국이 아무 말 없이 석진에게 티슈를 건냈다. 자연스럽게 티슈를 받은 석진이 제 눈가를 훔치며 코를 훌쩍였다.

"혹시 오늘 시간 돼요?"

"…왜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영화 한편 보여주고 싶어서요. 석진씨랑 잘 어울리는 영화가 있거든요."

"…네. 좋아요."

석진의 긍정적인 대답에 정국이 해맑게 웃으며 그럼 저희 집으로 가요ㅡ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
[ Love Yourself ]

화면 가득 메워진 글씨에 정국이 석진을 바라보며 웃었다.

"분명 보고 감동먹을 걸요. 딱 그냥 석진씨를 위한 영화."

"…"

정국의 말에 석진이 조용히 티비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둘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없이 영화가 끝이나고 정국이 옆에 앉은 석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요? 어? 석진씨 또 울어요?"

닭똥같은 눈물을 방울방울 흘려대는 석진에 정국이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각티슈를 가져와 석진에게 건냈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막힌 코를 흥흥 풀며 마음을 간추린 석진이 목을 큼큼 다셨다.

"석진씨는 진짜 울보네요. 툭하면 울고."

정국이 장난스런 말투로 석진에게 말했다.

"정국씨…."

"네?"

"정국씨는 운명을 믿어요?"

"운명요?"

맥락없는 물음에 정국이 당황해 되물었다.

네ㅡ 석진의 대답에 정국이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석진 또한 깊은 생각에 잠겼다.





*
'​이름이 김석진이에요? 진짜 귀엽다.'

​​'형은 자신감이 필요해요. 그래서 그런데 형이랑 ​진짜 딱 어울리는 영화 있거든요? 같이 보러가요.'

​'그렇게 감동적이었어요? 그만 울어요, 눈 닳겠다. 형은 진짜 울보구나?'

그 때와 같았다. 너는 만날 때마다 늘 한결 같았지. 어쩜 사람이 이럴 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너는 늘 같은 사람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고 계절이 변해도 너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너의 그런 한결같음에 나 또한 너를 놓지 못하고 이렇게 주변을 헤매는게 아닐까. 혹여나 네가 나를 알아봐주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늘 너의 주변에서 맴돌았고, 혹여나 네가 우리의 마지막을 기억해줄까 늘 같은 옷만을 고집했다.

그런데 석진은 자신이 없었다. 또 너를 잃을까봐. 또 내가 너를 죽음이란 절벽으로 몰아낼까봐. 그게 두려워 알게모르게 너를 밀어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씨! 석진씨!"

정국의 부름에 석진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왜 그렇게 멍을 때려요. 저한테 질문해놓고."

"…아. 죄송해요. 그래서 정국씨는 운명을 믿나요?"

믿는다면 다시 한번,
"글쎄요.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믿고 싶어요."

믿어준다면 다시 한 번,
"그리고 운명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요."

정국의 말에 석진이 울컥 참아왔던 눈물을 와락 쏟아내었다. 석진의 눈물이 신호가 된 듯, 창 밖에서도 한방울씩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적했다.

"석진씨 왜 또 울어요. 몸에 수분 다 날아가겠네."

그렇게 말하며 정국이 다정하게 석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정국의 품에서 하염없이 울던 석진이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정국씨. 우리 나가요."

"네? 바깥에요?"

석진이 눈물을 벅벅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정국씨한테 보여주고 싶은게 있어요."

얼떨결에 밖으로 끌려나온 정국이 제 앞에 서있는 석진을 바라봤다. 고민하는 듯한 석진의 모습에 정국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석진씨가 보여주고 싶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다 준비 됐어요."

정국의 말에 석진이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두 눈을 부릅뜨며 정국에게 입을 맞췄다. 깜짝 놀란 정국이 몸을 부르르떨며 뒤로 물러나려하자, 석진이 그를 꼭 끌어안았다.


정국은 제 앞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에 놀란 마음을 감추지못한채 바라만 보았다. 긴 입맞춤이 끝이나고 석진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자, 정국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벙찐 채 석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기억 나?"

"…말도 안돼."

"…."

"진짜 말도 안돼…."

"처음에도, 두번째에도, 그 다음에도 그랬어."

정국이 여전히 놀란 눈으로 석진을 바라봤다.

"그럼…내가 이제까지 느꼈던게 처음이 아니었던거에요? 내가 이미 알고있던 거라, 그래서 그렇게 느꼈던 거였어요?"

석진이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형이랑…나랑…사랑하는 사이였고…"

끄덕ㅡ

"매번 내가 차에 치여 죽었었고…."

끄덕ㅡ

"다시 태어나면 형이 날 찾아왔었고…?"

"응."

"그래서 운명을 믿냐고 물어본 거에요?"

"응."

"안믿는다 했으면 어쩌려고?"

"놓아주려했어. 더는 힘들지 않게."

"왜 그걸 형 마음대로 판단해요."

"늘 너는 나 때문에 죽었으니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같은 이유 때문에."

"…."

"날 만나러 오다 죽었었거든, 너."

"형. 운명을 믿냐고 물었죠."

"응."

"믿어요. 그리고 그건 내 운명때문이에요. 절대 형 때문이 아니라구요."

"…."

"우리 이제까지 늘 봤던 영화있죠. 내가 추천해준 영화."

"…응."

"너 자신을 사랑하라."

"…."

"형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있는 사람이에요.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지 마요."

"앞으로 나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든, 우리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건 운명인거고 절대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이때까지처럼 서로 평범하게 사랑하고 아껴주면서 잘 지내면 되는 거라구요. 알겠죠?"

"…응."

"다시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잊어버리지 않게 해줘서 고마워요. 처음만났던 그 때의 느낌을 이제는 알지 못하게 됐지만 그만큼 더 잘해줄게요."

"…응."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함께해요. 미안해 하지말고."

"…응."




김석진이란 사람을 만나서 행복했다고. 행복하다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만날 때마다, 알아볼 때마다 얘기해 줄래요. 더 이상은 혼자 아프지말고 함께 나누자고.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아프고 힘드니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니까. 영원히 함께할 동반자로서 따뜻한 한마디를 건내줄래요. 전정국, 그의 연인으로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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