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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총/- 정진

[정진] 거짓말쟁이

제약 2018. 1. 25. 08:55


#.
"싫어!"

정국이 별안간 생떼를 쓰며 고집을 피웠다.

"정국아."

"싫다구! 형아 그거 거짓말이잖아!"

있는 눈물, 없는 눈물 퐁퐁 흘려가며 울어대는 정국 탓에 석진이 난감한듯 머리를 긁적였다.

"정국아. 진짜야. 정국이가 떡국 딱 열 개만 더 먹으면 형이 데리러 올게, 응?"

석진의 애원 아닌 애원에 정국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물었다.

"…진짜루?"

"진짜로."

"거짓말 아니고?"

"응. 거짓말 아냐."

"형아 꾸기랑 약속한 거야. 잊어버리면 안돼."

정국이 내민 손가락을 석진이 제 새끼손가락으로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절대 안 잊고 있을게."

"진형. 이제 가야 돼요."

태형이 석진의 이름을 부르며 재촉했다. 그에 석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정국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있어, 떡국 열심히 먹고있으면 형이 다시 찾아올게."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인 정국이 석진을 따라 자그마한 손을 흔들었다. 정국의 행동에 살짝 미소를 지은 석진이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멀어지는 석진을 바라보던 정국이 화들짝 놀라며 대뜸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우당탕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황급히 손에 무언가를 쥐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갔다.

"어머, 얘, 정국아!"

어머니의 부름도 가볍게 무시한 정국이 석진이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로 달려들며 석진에게 쥐고 있던 반지를 던졌다.

"형아! 이거!"

정국이 다급하게 던진 반지를 받든 석진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닫히는 문 사이로 정국의 모습이 보였다 사라지며 그의 목소리만 맴돌았다.

"꼭 끼고 다녀! 내가 알아볼게! 그걸로 형아 알아볼게!"

정국의 목소리조차 허공에서 흩어지고 석진에게 남은 건 은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원석이 박힌 반지 뿐이었다.








#.
후ㅡ 석진이 매서운 날씨에 허공으로 흩어지는 입김을 바라보며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온 지도 어언 15년이 다 된 지금. 석진은 완벽한 서울사람이 되어 있었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신호등에 석진이 서둘러 걸음을 옮기며 가까이 있던 카페로 발을 들였다.

딸랑ㅡ

"어서 오세요."

익숙하게 카운터로 걸어가 주문을 마친 석진이 진동벨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장갑을 끼지 않은 석진의 손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호호 불며 시린 손을 녹이던 석진이 울리는 벨을 주문한 핫초코와 맞바꾼 뒤 다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우웅ㅡ 우웅ㅡ

호록호록, 뜨거운 음료를 조심스럽게 나눠마시던 석진이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어, 태형아."

"지금 카페야."

"너무 추워서. 몸만 녹이고 갈게."

"어 알았어. 응."

석진이 전화를 끊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따뜻한 핫초코를 볼에 가져다대며 차가워진 볼을 녹이던 석진이 카페 문을 열기 위해 몸을 앞으로 밀어 넣다, 먼저 문고리를 잡아당긴 정국에 의해 그대로 정국을 향해 안겼다.

"아!"

석진이 들고있던 핫초코를 정국의 흰 무지티에 그대로 부어버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석진이 다급한 목소리로 정국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어떡해. 많이 뜨겁죠…."

미처 흡수되지 못한 핫초코가 바닥으로 뚝뚝 흐르며 정국이 신고있던 흰색 운동화에 튀었다.

"아 진짜 어떡해. 죄송합니다."

석진이 90도로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정국이 괜찮다며 흔쾌히 웃어넘겼다.

"괜찮아요. 제가 너무 문을 확 잡아당겼나봐요."

급하게 휴지로 열심히 닦아내던 석진이 정국에게 물었다.

"그…옷 안에도…묻으셨을텐데…."

"아, 괜찮습니다."

정국이 괜찮다며 손사례를 쳤지만 석진이 말을 이었다.

"제가 너무 죄송해서 그래요. 안그래도 집에 가던 길이었는데 제 옷이라도 드릴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아요."

정국이 단호하게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석진의 성격상 도저히 가만히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밖에 날씨가 얼마나 추운데요. 이렇게 돌아다니시면 감기 걸려요."

석진이 잔뜩 걱정어린 말투로 말하자, 정국이 웃으며 할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ㅎ. 그럼 조금만 신세 지겠습니다."

정국의 말에 석진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국을 제 집으로 안내했다.







#.
"뭐야?"

태형이 물었다.

"태형아. 손님한테 뭐야가 뭐야."

"누구세요."

"아, 저는 그…."

"내 손님이야. 신경 꺼."

석진이 정국을 이끌고 태형을 지나쳤다.

"형 여기 내 집이기도 하거든?"

"그래서 내 방으로 데려가잖아."

석진이 정국을 앉히곤 짜증스레 문을 닫았다.

"죄송해요. 제 동생이 원래 저래요."

"형제가 다 그렇죠."

정국이 웃으며 말했다.

"형제 있으세요?"

"아니요. 저는 외동이에요."

정국의 대답에 석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외로웠겠다."

"원래 친한 형이 있어서 외롭진 않았어요."

"아 그래요? 좋은 형이네."

"아니요."

"네?"

당연히 맞아요. 좋은 형이었어요.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던 석진은 예상 외의 반응에 정국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나쁜 형이에요. 순 거짓말쟁이형."

"왜요?"

"이사가고 다시 찾아오겠다면서 안왔어요. 계속 기다렸는데."

"아…보고싶겠어요."

"네. 그래서 저도 서울로 왔어요."

"어? 원래 서울 안 사셨어요?"

"네. 원래는 부산 살았어요."

"아 정말요? 저도 부산에 살았었는데."

석진이 정국의 말에 의외라며 놀랐다.

"전혀 부산사람 안같아 보여요."

"그쪽도요."

"네?"

"아, 아뇨. 감사하다구요."

정국이 어색하게 웃었다.

석진이 옷장에서 꺼낸 여벌 옷을 늘어놓으며 정국에게 말했다.

"취향에 맞는 걸로 고르세요."

"핑크색 좋아하시나 봐요."

10벌이면 그 중에 8벌은 핑크색이 들어간 옷에 정국이 석진에게 물었다. 그에 석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좋아해요."

"저 아는 형도 핑크색 좋아했어요."

"아 정말요? 핑크색 좋아하는 분 흔치 않던데."

"그쵸. 그래서 신기한 거 같아요."

정국이 미소를 지으며 제 앞에 놓인 검정색 목폴라티를 골라집었다.

"저는 이걸로 입을게요. 옷은 여기서 갈아입으면 되나요?"

"아, 네!"

석진이 끄덕이며 대답하자, 정국이 입고있던 흰 무지티를 홀랑 벗어재꼈다.

"…부끄럼 안타시나봐요."

석진의 물음에 정국이 예, 뭐…. 하곤 말끝을 흐렸다. 옷을 다 갈아입은 정국이 감사인사를 건네곤 뒷 말을 덧붙였다.

"이것도 인연인데 저희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아 그럴까요? 그럼 저희 퉁성명부터 해요. 저는 김석진입니다."

"…전정국이에요."

"어, 저 아는 동생이랑 이름이 똑같으시네요."

"…그 동생 이름도 전정국이었나요?"

"네…. 제가 아끼던 동생인데. 이사를 가는 바람에 못만나고 헤어졌어요."

"다시 찾아가면 만날 수 있지 않아요?"

정국의 물음에 석진이 고개를 저었다.

"찾아가봤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너무 늦게 가서 그런가 봐요."

석진의 말에 정국이 잔뜩 진지해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다시 찾아갔었다구요?"

"네? 아, 네. 제가 딱 10년 뒤에, 그러니까 떡국 열개만 더 먹으면 찾아가겠다고,"

석진이 말을 채 다 마치기도 전에 정국이 석진의 손을 붙잡고 들어올리며 말했다.

"난 다 잊어버린 줄 알았어요."

"네?"

"이 반지, 분명 내가 준 거 맞는데. 같은 사람인 거 같으면서도 나를 기억 못 하길래. 난 형이 날 다 잊어버린 줄 알았어요."

정국의 말에 석진이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그니까…지금 그 쪽이…어릴 때 그 정국이라는 말씀이세요?"

"네. 그 정국이요. 햇빛아파트살던 그 정국이."

석진이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어떻게 알았어?"

"처음에 태형이형 이름듣고 긴가민가했는데 바로 형 손가락 보니까 확신이 들더라구요."

"…."

"내가 준 반지 아직 끼고 있구나."

"…."

"아직 날 생각해 주고 있었구나."

정국의 말에 석진이 바람빠짐 소리를 내며 헤프게 웃었다.

"하하…말도 안돼 진짜…."

"…."

"내가 얼마나 찼았는데…."

"…."

"…먼저 찾아줘서 고마워, 정국아."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형."

"나 진짜 너 애타게 찾았다. 웬 줄 알아?"

"왜요?"

석진의 말에 정국이 웃으며 물었다.

"다 크면 결혼하려고. 누가 채가기 전에 데려가려고."

"…."

석진이 대답하자, 정국이 놀란 토끼 눈을 뜨고 석진을 바라봤다.

"짝사랑만 20년 한 줄 알았는데."

"혀엉…."

"쌍방이었네."

웃으며 말하는 석진에 정국이 그런 석진을 껴안았다.

"진짜 저랑 결혼하는 거죠. 이번엔 거짓말치기 없기예요."

"야ㅡ 따지고보면 거짓말은 아니었다?"

석진이 비아냥대자, 정국이 말했다.

"됐어요. 한번 거짓말쟁이는 영원히 거짓말쟁이야."

"그럼 결혼하잔 것도 취소?"

"아 진짜, 혀엉ㅡ!"

석진이 얄밉게 정국을 놀리며 웃었다.

그 상황을 문 너머에서 듣고있던 태형은 진짜 지독한 인연이라며 혀를 끌끌차더니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축가는 내가 불러줘야겠네."
하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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