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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자꾸 헤실헤실 거려?”

참다못한 석진이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남준을 향해 물었다.


“왜냐니…너만 보면 웃음이 나오는걸.”
“…어디 가서 그런 미친 소리 하지 마.”


사실인데…. 남준이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중얼거렸다. 남준은 석진보다 한 학번 아래의 후배다. 처음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주변 친구들의 씨씨니 뭐니 여친 한번 만들어 봐야 하지 않겠냐, 대학은 여친 사귀러 오는 거다. 이런 얘기들은 남준에게 익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캠퍼스를 지나던 석진과 마주쳤고 그 자리에서 남준은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게 됐다. 지치지도 않는지, 아무리 석진이 거절하고 매몰차게 굴어도 굳건하게 매달리는 남준에 이젠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 정도가 되었다.


“너 진짜 나한테 왜 그래?”
“뭐가?”
“내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 징그럽게 따라다니냐고. 아니면 뭐, 나한테 악감정 있어서 괴롭히는 거야?”
“난 순순히 네가 좋아서야.”
“…진짜 필터링 하나도 없네.”


석진이 홱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 좀 봐.”
“싫어.”
“나 좀 봐줘.”
“싫다니까.”


확ㅡ 남준이 억지로 석진의 팔을 잡아당겨 제 쪽으로 돌아보게 만들자, 잔뜩 붉어진 얼굴의 석진이 입술을 앙 다물고 있었다.


“…뭐야, 이 얼굴….”
“….”


완전 귀엽잖아…. 남준이 석진의 얼굴만 한 큰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며 생각했다.


“왜…왜 나 같은 거 좋아해.”
“너 같은 게 뭔데.”
“….”
“네가 뭐든, 뭘 했든, 나는 상관없어. 내가 좋아하니까.”
“실망할 거야.”
“응.”
“상처도 받을 거야.”
“응.”
“…결국 날 떠날 거야.”
“아니, 안 떠나.”


남준의 단호한 말투에 석진이 흥분해 조금 커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떠날 거야! 나한테 실망해서 날 떠날 거라구!”
“왜 그렇게 확신해?”
“넌 나 같은 거랑 안 어울려.”
“도대체 그 나 같은 게 뭔데 너 자신을 이렇게 깎아내려.”
“…알게 될 거야. 알게 되면 날 떠날 거고.”
“….”
“그래서 나는 네가 싫어. 왜 자꾸 싫다는데 다가와. 왜 자꾸 싫다는데 웃어. 왜 자꾸 싫다는데 잘해줘.”
“….”
“난 그게 너무 무서워. 받는 것만큼, 주는 것만큼 잃을게 많아지니까. 난 더 이상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단 말이야.”



석진아, 나랑 내기 하나 할까?



“…내기?”
“응. 네 말대로 내가 떠나게 된다면 더 이상 상처받을 일 없게 깔끔하게 마음 정리할게.”
“….”
“반대로 내가 안 떠나고 네 옆에 계속 붙어있다면.”




“그땐 나 제대로 바라봐 줄래?”













#.
“야 오늘 학식 더럽게 맛없다는데.”
“솔직히 밥심으로 학교 다니는 거지, 안 그러냐?”


몰라. 남준이 제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만 시선을 고정시키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에 한 친구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남준의 핸드폰 속 화면을 힐끗 쳐다보았다.


“어. 이 선배 완전 유명하잖아.”
“뭐?”


다시 말해봐. 석진의 sns를 뒤져보고 있던 남준이 그의 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나도 건너건너로 들은 얘긴데 이 선배 질 되게 안 좋다고….”
“어떻게 안 좋은데.”
“야…잘못 말하면 한대 치겠다….”

“김남준 그 선배 좋아하잖아.”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쪽 빨던 윤기가 말했다. 뭐? 진짜야? 야, 그럼 내 입으로 이걸 어떻게 말해;; 남준의 시선을 애써 피한 친구가 윤기를 향해 sos를 요청했지만 윤기는 가볍게 무시한 채 제 핸드폰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안 때릴 테니까 말해봐. 무슨 일인데.”


남준의 진지한 목소리에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가 입을 열었다.


“작년에 신입생 환영회 때…그 형이 신입생이었잖아. 그때 과대가 그 형보고 첫눈에 반했다나, 암튼 관심 있다고 막 들이댔었나 봐. 처음엔 거절하다가 결국엔 사귀게 됐대. 둘이서 깨도 볶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김석진형이 바람을 피웠다던데?”
“…바람?”
“응. 근데 그것도 그냥 바람이 아니라 원나잇이었던 거야. 과대 몰래 다른 남자들 후리고 자기 자취방 데려가서 잤다는 거지. 거기에 우리 학교 교수님도 있었대.”
“….”
“그게 어느 날 과대 귀까지 들어가게 된 거고 결국 과대가 헤어지자고 했더니 바라던 바라면서 이제 해방이라고 막 그런 얘기를 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네 말은 김석진이 꽃뱀 짓을 했다는 거지?”
“그렇지. 난 솔직히 너도 당할까 봐 무섭다.”
“직접 봤어?”
“…어?”
“네 눈으로 직접 봤냐고.”
“ㅇ…아니…말이 그렇다는 거지….”
“난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진 못 믿어.”


쾅ㅡ 남준이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당황스러움이 가득 담김 표정의 그 옆에서 윤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렇게 나와야 김남준이지.”











#.
“왜 왔어.”
“나 다 알고 있어.”
“뭘….”
“네 얘기. 1년 전 네 얘기.”
“….”
“그거 숨기고 싶지?”
“….”
“나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어. 나만 알면 치사하니까 나도 내 비밀 하나 말해주려고 왔어.”
“그게 뭐야….”
“나 사실 너랑 자고 싶었던 거 맞아. 너만 보면 웃음이 나고 너만 보면 행복해지고…그게 계속 되니까 이제 널 품에 안아보고 싶더라. 옛날에 그런 일 있었는데도 내가 이런 말하는 거 실례인 거 아는데 그래도 사실대로 말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 그래서.”
“들어와.”
“어?”
“다리 아프니까 들어와서 얘기하라고.”


.
.
.
.
.
.


“….”
“….”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집 안은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그 고요함을 깨고 석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솔직히 좀 의외네.”
“뭐가?”
“그 얘기. 듣고 아무렇지도 않은 거.”
“사실인지 아닌지는 내 귀로 듣고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사실이면, 좀 충격적이야?”
“글쎄. 내가 아는 김석진이랑은 많이 다른 애던데.”
“네가 아는 김석진이 사실은 그런 애일 수도 있잖아.”
“넌 네가 그런 애라고 생각해?”
“….”
“네 입으로 말해주기 전까진 안 믿을래.”
“…왜 이렇게까지 해? 이렇게 해서 네가 얻는 게 뭔데?”
“너.”
“….”
“난 너 하나면 돼.”


남준의 말에 석진이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석진을 바라보는 남준도, 그런 남준의 시선을 피하는 석진도. 둘 사이에 더 이상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바보 같아.”


한참의 침묵 끝에 석진이 피식 웃었다.


“왜.”


남준이 석진을 따라 미소 짓자, 석진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남준에게 말했다.


“너…바보 같다고….”
“왜 울고 그래.”
“씨…웃지 마…자꾸 나보고 웃지 말라고…잘해주지도 말라고….”
“왜 안되는데.”
“왜 자꾸…기대게 해….”
“….”
“왜 자꾸…기대하게 해….”
“….”
“너만 보면 하던 거짓말도 못하게 되잖아….”
“나한테는.”
“…?”
“나한테만은 거짓말 안 해도 돼.”
“….”
“나한테만은 솔직해도 돼.”


남준의 말에 석진이 참아왔던 울음을 쏟아내었다. 품에 안겨 엉엉 우는 꼴이 마냥 아이 같았다. 얼마나 참아왔을까, 알아주는 이 없이 혼자 삭여야 하는 이 외로움을 감히 누가 알아줬을까. 남준에게 있어 석진의 1년이란 시간의 무게를 체감할 순 없었다. 토닥토닥ㅡ 품에 안겨 우는 석진의 등을 그저 어루만지며 달래줄 수 밖에는.







“다 울었어?”
“…응.”

….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아 왜 거기서 울어가지고…. 석진이 제 머리칼을 움켜쥐며 끙끙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남준이 작게 웃었다.


“왜 웃냐.”
“귀엽잖아.”
“뭐가.”
“내 앞에서만 이런다는 게.”
“짜증 나.”
“왜.”
“짜증 나니까 웃지 마.”
“그런 게 어딨어.”
“아 몰라.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너 집에 가.”


야야, 석진아. 밀지 마. 석진이 남준을 문 밖으로 밀어내자, 남준이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척하며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고마웠어. 덕분에 속 시원하네.”


석진이 웅얼웅얼 중얼거리며 하는 말에 남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울고 싶을 때 말해. 옆에 있어줄게.”
“됐네요. 얼른 가기나 해.”
“알았어, 알았어. 갈게. 내일 봐.”
“응.”


끼이익ㅡ 쾅ㅡ 문이 닫히고 다시 석진의 집 안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잠시 문 앞에 가만히 서 있던 석진이 뒤돌아 들어가려는 순간,

똑똑똑ㅡ


“석진아.”


문 밖에서 남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기는,”

“내가 이긴 거야.”

….

“네가 말 안 해도 나는 그거 거짓말인 거 알아.”
“….”
“좋아해, 석진아.”
“….”
“다 잊고 내일은 웃으면서 보자. 난 네가 웃을 때가 제일 좋더라. 갈게.”


저벅저벅ㅡ 남준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그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조그만 목소리로 석진이 말했다.


“김남준…내가 웃어도 너는 웃지 마. 진짜 좋아한다고 인정해 버릴 거 같으니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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