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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총/- 랩진

[랩진] 질투가 나.

제약 2018. 2. 26. 03:11


#
“우리 이번에도 또 같은 반이네.”

석진이 웃으며 남준에게 말했다. 예쁘게 접히는 석진의 눈꼬리에 남준이 볼에 콕 박힌 보조개를 드러내며 따라 웃었다.

“그러네.”

“이러다 고등학교 3년 다 너랑 보내겠다.”

“난 좋은데. 넌 싫어?”

갑작스런 남준의 물음에 당황한 석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이…나는 그냥 한 소리지…. 말랑한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고 툴툴거리는 석진의 모습이 여간 귀여워 보일 수 없었다. 어릴 때 버릇이랍시고 그 말랑한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고 싶은 욕구를 겨우 참아낸 남준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석진의 말에 대답했다.

“아니면 말고ㅡ.”

쾅쾅ㅡ

“자, 출석 번호 순서대로 앉을 거니까 호명하면 자리 찾아서 앉아라.”

담임선생님의 말에 남준과 석진이 번갈아가며 눈을 맞췄다. 작년에는 앞뒤였으니까 이번에도 그렇겠지? 석진은 당연스레 그러겠거니 생각하며 남준의 뒤를 따라갈 준비를 하였다. 불과 몇초 전만 해도.

“김남준. 김도연. 김석진.”

남준 역시 당연히 제 뒷번호로 호명될 줄 알았던 석진이 제 뒷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적잖게 충격 먹은 듯 했다.

“자리는 대충 앉았고 임시반장, 부반장을 뽑을 거야. 지원자 있냐?”

“….”

“그럼 그렇지. 귀찮으니까 1번이 반장하고 2번이 부반장 해. 가만있어봐라…1번, 2번이 누구지?”

담임선생님의 말에 남준과 그 옆자리의 도연이란 아이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딱 보기 좋네. 앞으로 너네 둘이 쭉 반장, 부반장 맡아줬으면 좋겠다. 괜찮지?”

“네? 선생님 그건,”

“네! 좋아요!”

남준의 말을 끊고 도연이란 아이가 대답했다. 남준의 난감한 표정이 선명히 드러났음에도 도연은 애써 무시하는 듯 했다.

“그래. 그럼 1년동안 수고해라. 수업 준비 잘 하고.”

담임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가자, 도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저 도연아.”

“응?”

남준의 부름에 도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아까 그렇게 상의도 없이 혼자 결정하는 건 좀 아니었다고 생각해.”

“아…미안해. 기분 나빴겠다. 그럼 지금이라도 선생님께 남준이는 반장 맡는게 싫다고 말씀드릴까?”

“아니 그 뜻이 아니라, 아…아냐. 한 학기동안 잘 해보자.”

“그래!”

도연이 남준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조용히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석진은 생각했다. 남준이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란 걸 안다는 건 그녀가 남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뜻인 것을.









#.
최근 남준은 반장의 역할때문에 굉장히 분주하고 바쁘다. 석진도 그를 알기에 가만히 있었지만 이젠 점점 한계에 도달할 것만 같았다. 옛날 같았으면 자신보다 석진을 더 먼저 챙겼을 남준이 제가 아닌 반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챙긴다는게 석진은 알면서도 기분이 나빴다. 물론 이 정도 쯤이야 참을 수 있었다. 반 아이들을 챙기고 나면 곧바로 석진에게 쪼르르 달려와 미안. 오래기다렸지. 하며 저를 어르고 달래는 남준이었기에.

석진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최근 눈에 띄게 남준에게 엉겨붙는 부반장, 그러니까 도연이었다. 선생님이 무슨 심부름만 시켰다하면 남준아! 나 좀 도와줘! 하며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일수였다. 바보같은 김남준은 그걸 또 도와주고 앉았다. 진짜 멍청하기 짝이 없지. 딱 봐도 남준에게 관심있어하는 그녀의 태도가 석진에게는 눈엣가시같았다.

“남준아.”

하교길에 문득 석진이 남준을 불러세웠다.

“응?”

그가 석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반장 그거. 안하면 안돼?”

그의 말에 심상찮음을 느낀 남준이 석진에게 물었다.

“왜?”

“너만 맨날 힘들잖아. 다른 애들은 다 노는데 왜 너만 고생해?”

“지금 내 걱정해 주는 거야?”

감동. 남준이 양 손을 제 가슴에 얹는 제스처를 취하며 석진을 향해 웃었다. 자신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했으나 장난처럼 받아들이는 남준의 태도에 석진이 됐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또 삐졌어.”

“내가 뭘.”

“뭐가 그렇게 맘에 안드는데.”

“알면 고칠 것도 아니잖아.”

석진의 삐딱한 태도에 남준도 조금 마음이 상한 듯 해보였다. 워낙 기분이 표정에 잘 드러나는 남준 탓에 석진도 순간 아차했지만 이미 한번 상한 마음이 되돌아오기까진 시간이 걸릴 듯 했다.

“말 좀 예쁘게 해.”

“네가 뭐라고 내 말투까지 신경 써?”

“뭐?”

“막말로 네가 내 부모님이야?”

“야 김석진.”

“그렇게 좋으면 평생 반장이나 하던가.”

남준에게 모진 말을 내뱉은 건 석진 본인이었지만 그 말이 되돌아와 본인에게 비수처럼 박히는 느낌에 석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석진ㅇ,”

탁ㅡ

“됐어. 손대지마.”

평소처럼 우는 석진을 달래려 눈가로 손을 뻗어온 남준의 손길을 석진이 쳐내었다. 잔뜩 붉어진 눈가를 벅벅 닦으며 석진이 그를 노려보았다. 아무 말 없이 석진을 바라보는 남준의 시선에 괜히 제가 진 것 같고 바보같은 느낌이 든 석진이 남준을 두고 홀로 걸음을 옮겼다. 석진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도 남준은 그 자리에 서서 석진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남준과 석진 사이에 냉랭한 분위기가 반 전체를 휩쓸고 있었다. 자신들의 일들도 아니면서 괜시리 남준과 석진의 눈치를 보는 아이들은 여간 불쌍해 보일 수 없었다.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아재개그를 치며 껄껄대던 석진의 목소리도,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서 웃으며 도와주던 남준의 미소도. 그 날 이후로 둘에게선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도연에겐 완벽한 타이밍, 좋은 기회였다. 이를 놓칠 리 없는 그녀가 남준에게 물었다.

“남준아,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별로.”

누가봐도 별 것 아닐 리 없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남준에 도연이 되물었다.

“나한테 말해 봐. 내가 고민상담 같은 거 기가막히게 잘 해.”

“….”

“진짜야. 믿어 봐!”

그녀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 태도에 남준이 미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푹 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제 석진이랑 싸웠어.”

“석진이랑? 왜?”

석진에게 도연이 눈엣가시였듯, 그녀에게도 석진은 눈엣가시였다. 애써 비집고 올라오는 웃음을 참으려, 도연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그동안 많이 소홀했나 봐. 잔뜩 서운한 티를 내더라고.”

“소홀할 수 밖에 없지! 너는 반장이고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근데 석진이가 그걸 이해 못해주는 거 같아서 조금 속상해.”

남준의 말에 도연이 자연스럽게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너는 잘못없어, 남준아. 석진이가 반장이었어도 똑같았을 걸? 석진이는 반장이 아니라 이해 못하는 거야.”

그녀의 말에 남준이 그런가. 하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래서 석진이랑은 어떻게 하고싶어?”

“당연히 풀고싶지. 근데 석진이가 화가 많이 나있는 거 같아서…. 말 걸려고 하면 자꾸 피하는 느낌이 들어.”

“그럼 내가 석진이랑 먼저 얘기 해 볼까?”

“아냐. 우리 둘 일인데 괜히 미안하잖아.”

“뭐가 미안해. 친구들끼리 친하게 지내야지. 나한테 맡겨!”

도연이 남준에게 자신있는 말투로 말했다. 남준이 그에 그럼 좀 부탁할게. 하며 그녀를 향해 웃어보였다.









#.
똑똑ㅡ

석진이 제 책상을 두들기는 소리에 양 팔에 품었던 얼굴을 들고 소리의 주인을 찾아 시선을 옮겼다.

“석진아. 우리 얘기 좀 할까?”

도연이 예쁘게 웃으며 석진에게 물었다. 석진이 잔뜩 인상을 구기곤 다시 제 품에 얼굴을 묻으며 대답했다.

“너랑 할 말 없는데.”

“남준이 얘기야.”

“….”

아 씨. 그녀의 말에 석진이 뒷머리를 헤집으며 일어났다.

“어디서 얘기할 건데.”

“따라와.”

도연이 앞장서며 뒷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를 따라나서던 석진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남준이 석진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할 말이 뭐야.”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두가지 소식이 있어. 하나는 좋은 거, 하나는 안좋은 거.”

“뭔데.”

“뭐부터 듣고 싶니? 아. 너 남준이 좋아하지? 그럼 후자부터 먼저 들려줘야겠네.”

“….”

“먼저 안좋은 거. 나 남준이랑 사귀어.”

“뭐?”

“그리고 좋은 거. 남준이는 너랑 계속 친구하고 싶대. 아, 남준이를 좋아하는 너로서는 이것도 안좋은 건가?”

그녀가 꺄르륵 웃으며 석진을 조롱했다. 그러나 석진은 도연이 저를 조롱하든말든 이미 남준이 도연과 사귄다는 사실에 적잖게 충격을 먹은 뒤였다.

“네가 김남준이랑 사귄다고?”

“그래.”

“언제부터? 남준이가 널 좋아했대?”

“너랑 다툰 거 달래주는데 고맙다고 고백하더라고. 그래서 나야 뭐. 싫진 않았으니까 받아줬지.”

“….”

“아무튼. 이제 앞으로 나랑 남준이 사이에 껴들 생각이걸랑 하지도 마. 아니. 앞으로 뼈도 못추리게 해줄게.”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린지 영문을 모르겠는 석진은 그저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연이 문득 제 머리칼을 한 움큼 쥐어잡더니 앞 뒤로 헝클이기 시작했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당황한 석진이 그녀를 말리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꺄아악! 도연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석진은 허공에 뻗었던 손 그대로 행동을 멈추었다. 비명소리에 놀란 남준이 교실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제 앞에 보이는 광경을 살폈다.

“….”

“….”

상황파악을 끝낸 남준이 쓰러져 있는 도연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부축하며 석진을 노려봤다.

“뭐하는 거야, 김석진?”

“남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애를 이렇게 때려?”

“뭐?”

언제 제 뺨을 쳐댔는지 빨갛게 부어있는 도연의 볼이 눈에 들어왔다. 허ㅡ 석진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남준아, 오해야.”

“오해든 뭐든 너한테 실망했어.”

“….”

남준이 벙쪄있는 석진을 지나치며 그녀를 부축해 보건실로 걸음을 옮겼다.









#.
“쟤가 김도연 존나 팼다매?”

“그렇게 안 봤는데 쟤도 참 사이코다.”

석진을 향해 수근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석진의 귀를 후펴팠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참아보려 꽉 쥐는 석진의 두 주먹은 애처로워 보였다. 남준의 귀에도 석진에 대한 모진 말들이 들리지 않았을 리도 없었지만 남준은 그 때의 일 때문인지, 석진에 관한 거라면 모조리 관심이 없다는 듯 회피했다.

하루, 이틀이면 모를까. 일주일 째 계속되는 악담에 결국 석진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티를 안냈을 뿐이지, 석진이 걱정되고 신경쓰였던 건 사실이었다.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생각하며 그 때 제가 너무 모질게 군 건 아닌가. 자책하는 남준이었다. 오해라고 억울하다고 말하던 석진의 모습이 떠오른 남준은 도연에게 그 때 있었던 일을 들어보기로 했다.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건지 날마다 보건실로 향하는 그녀 덕에 남준은 손쉽게 그녀의 행방을 알 수 있었다. 보건실에 가까워 질수록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가 오늘도 보건실에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 손잡이를 잡는 순간, 남준은 제 귀를 의심했다.

“아 진짜 그 얼빠진 표정보는데 온 몸이 다 짜릿하더라.”

남준의 육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건 들어가면 안된다고.

“내가 김남준이랑 사귄다니까 진짜냐고. 막 그러는데 당연히 구라지!”

“….”

“근데 더 웃긴 건 뭔 줄 알아? 내가 일부러 머리 헝클이고 뺨 때린 거 아마 김남준은 모를거야. 걔는 그거 다 김석진이 한 줄 알 걸? 얘가 순수한 건지, 멍청한 건지. 잘 속아주더라.”

제 목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걸 모르는 도연은 신나게 친구와 떠들어댔다. 조용히 밖에서 얘기를 다 듣고있던 남준은 혼란, 미안함, 화남, 복잡함 이러한 감정들이 뒤섞여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그 순간에 진짜 미련하게도 김석진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르더라. 남준이 보건실 문을 열어재꼈다.

“어, 남준아 나 걱정돼서 왔어?”

도연이 황급히 휴대폰을 베개 속으로 숨기며 말했다.

“말해.”

“어?”

“그 날 왜 그랬는지. 말하라고.”









#.
아프다. 미치도록 아프다. 석진은 이게 마음이 아픈건지, 몸이 아픈건지.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건지,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픈건지. 이젠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그토록 믿었던 남준이고 그토록 친했던 남준이었는데 고작 여자애 하나 때문에 싸웠다는게 무슨 아침드라마급 시나리오 같았다.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남준과 저 사이에 신뢰가 이렇게 없었다니. 고작 여자애 하나 때문에…여자애…김도연….

우우웅ㅡ

“아 씨! 깜짝이야!”

미친듯이 울려대는 진동에 석진이 몸을 뒤척이며 휴대폰을 찾아 꺼내들었다.

[모질이]
010-0912-1204

남준에게서 걸려 온 전화에 당황한 석진이 어물쩍대었다. 아 이걸 받아, 말아. 석진이 수천번도 더 고민하는 사이 전화는 끊기고 석진의 휴대폰에는 부재중이 남았다.

“아…받을 걸….”

이미 후회해도 늦었지. 석진이 제 머리를 헝클이며 중얼거렸다.

우웅ㅡ

석진의 휴대폰이 빛을 내며 깜빡이다 꺼졌다. 전화인 줄 알고 우당탕거리며 휴대폰을 집어든 석진이 문자인 걸 확인하고 침대에 축 늘어졌다. 문자 역시 남준에게서 온 문자였다.

[PM 4:30] 내일은 학교 꼭 나와. 할 말 있어.

드디어 종말인가. 석진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씌웠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지금 이대로 이 시간에 멈추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석진은 잠에 들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흘러 아침이 되었다. 석진이 부시시 일어나 피곤에 쩔은 하품을 쩍쩍 해댔다. 하루 조금 쉬고 나니까 괜찮은 거 같기도. 석진이 교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자켓 주머니에 귀마개를 챙겨 넣었다. 여차하면 귀에 꽂고 엎드려 있으려고. 그런 일이 없기 바라며 석진은 집을 나섰다.










#.
남준과 석진이 싸웠을 때보다 더 냉랭해진 교실 분위기에 석진 또한 숙연해진 마음으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조금의 수근거림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는 석진이 챙겨 온 귀마개마저 쓸모없게 만들었다.

언제 그 할 말을 한다는 건지, 남준은 깜깜무소식이었다. 수업하면 수업하는대로, 끝나면 끝나는대로 남준은 무언가 계속 바빠보였다. 답답한 마음에 석진이 먼저 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스크래치 난 자존심에 뭐 더 금갈게 있다고. 석진은 절대 먼저 입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남준이 조심스럽게 석진에게 다가왔다. 눈치 빠른 석진이 다가오는 남준을 애써 모른 채 하며 창 밖을 바라봤다.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앞에서 낑낑대는 남준의 모습이 귀여웠다. 내가 양보 해야지. 석진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남준에게 물었다. 물론 말투는 화난 말투로.

“할 말 있어?”

“어….”

“뭔데?”

“나가서 얘기 하자.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거 같아.”

남준을 따라 나온 석진은 그의 발 뒷꿈치만 쳐다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콩ㅡ

“아!”

뒷꿈치만 쳐다보다 갑작스럽게 멈춘 남준을 보지 못한 석진이 그의 넓직한 등에 얼굴을 들이박았다.

“아, 미안.”

남준이 급하게 몸을 돌리며 석진의 얼굴을 어루만지려 손을 뻗다 허공에서 멈추었다.

“….”

머쓱해진 남준이 제 손을 내리곤 심호흡을 하더니 천천히 입을 떼었다.

“…미안해.”

“…응?”

“내가 오해했어.”

“…뭘?”

석진은 지금 이 순간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예상했던 시나리오와는 다른 전개에 두뇌회전이 멈춘 석진은 그저 어버버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그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너부터 믿었어야 했는데….”

남준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과 한마디가 뭐라고. 그 동안에 남준에게 억울했던 감정들이 복받쳐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석진은 두 눈에서 퐁퐁 눈물을 쏟아내었다.

“아이씨…안 울려고 했는데….”

석진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그대로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며 자국을 남겼다. 그런 석진의 모습에 남준이 안절부절하고 있자, 석진이 말했다.

“뭐해. 안 닦아주고.”

석진의 말에 남준이 그제서야 잔잔하게 미소지으며 제 손으로 석진의 눈가를 쓸어내렸다.

“미안해…진짜.”

남준이 석진의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당연히 미안해 해야지.”

“할 말이 없네.”

정성스레 석진의 눈물을 닦아주던 남준의 손을 붙들고 석진이 말했다.

“나만 봐.”

“응.”

남준이 대답했다.

“나만 믿고.”

“응.”

“나만 사랑해줘.”

“응…응?”

석진의 말에 남준이 되물었다.

“….”

“잠시만….뭐라고 했어, 석진아?”

“딴 여자, 딴 남자. 보지말고 나만 봐달라고. 나만 사랑하고 나만 아껴달라고. 너한테는 내가 제일 먼저여야 돼.”

“….”

“다른 사람한테 웃어주지말고 다른 사람한테 친절하게 대하지도 마. 네가 너무 잘생겨서 다 넘어 올 거란 말야.”

“…풉.”

“왜 웃어!”

“석진아…너 지금 질투해?”

“그래! 질투한다! 왜!”

아. 이 귀여운 아이를 어떻게 하지. 남준이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석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질투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뭐?”

“너무 사랑스럽네.”

뽀뽀해도 돼? 남준의 물음에 석진이 미쳤냐며 소리를 빽 질러대었다. 발그레해진 석진의 두 귀가 석진이 이 말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를 알기에 남준도 석진에게 더 잘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는 김석진 울 일 없게 만들어야지. 투닥거리며 교실로 돌아온 남준과 석진은 그대로 다시 교실 밖으로 불려 나갔다. 교과 선생님에 의해.

“수업도 빼먹고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다 와! 밖에 나가서 무릎꿇고 손들고 앉아있어!”

조용히 교실 앞에 무릎 꿇고 자리 잡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푸스스 웃었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장장 한시간을 무릎꿇고 손들고 벌 받았더란다. 지치지도 않는지 한시간 가량 꽁냥대면서.


후에 교실에는 봄바람이 불었다. 남준과 석진의 알콩달콩한 꽁냥질이 만들어낸 흩날리는 꽃잎들과 함께.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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